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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4일 화요일

아저씨 - 지금 짠 변신 할 타임

영화4. 아저씨 [2010, 이정범]

무엇보다 영화의 초점이 전 인류의 평화와 박애가 아닌 ‘한 사람’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분명 보편적인 인류애가 아닌 한 사람을 향한 사랑 이야기지만, 이성을 향한 집요한 구애와는 다른 것이다.




전당포는 물건을 맡기고 돈을 꾸어 주는 곳이다. ‘전당포의 물건’이라는 것은 누군가 사용하고 있던, 혹은 소유하고 있었던 가치 있는 물건들이다. 골동품점과 다르다. 전당포는 철저하게 누구의 소유인지와 물건의 시가만을 따진다. 이 전당포를 배경으로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렵사리 오늘을 버티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태식 역시 이러한 공간적 속성을 그대로 닮은 인물이다. 그는 소유의 개념에 매우 엄격하다. 물건에 있어서는 감정의 개입 없이 객관적인 가치를 매긴다. 초반부에 소미에게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마”하던 태식의 외침은 대단한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에야 그 말을 이해했다. 전당포에 맡겨진 물건들은 최소한의 오늘이다. 누구든 각자의 입장에서 그 최소한의 오늘을 지켜야 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



돈을 빌려주고 물건을 담보로 삼고 있다는 것은 매매로 관계가 끝난 것이 아니라 주인이 그 물건을 되찾아 갈 때 까지 둘을 채무관계로 얽히게 한다. 둘의 관계가 끝나는 것은 기정된 사실이지만 단번에 끝이 아닌 것이다. 돈을 갚고 물건을 찾아 가거나, 기한 내에 돈을 갚지 않는 것으로, 규칙이 어겨지면 전당포 주인이 그 물건을 처분하는 것이다. 주목해야 하는 점은 채무자가 의무를 다 다하지 못할 때야 비로소 룰이 깨진다는 것이다. 태식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장면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 읽었던 한 리뷰에서 “ 당신이 진 빛은 어떤 것 인가” 하는 구절이 떠올랐다. 감정적인 빛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싶었다. 미래나 과거가 삶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할 때조차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 고리는 여전히 얽혀 있는 것.   영화 ‘아저씨’에서는 혈연이나 학연 같은 구체적인 관계가 아닌 그냥 동네 아저씨지만, 소녀와의 관계가 가장 단단한 끈이었던 것이다. 관계에는 관계에 어울리는 적정한 선이 있는데 영화 초반부의 아저씨는 이웃집 아저씨로서의 가장 적당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관계가 위협 당하자 백마탄 기사처럼 짜잔하고 변신(?)을 한다. 앗, 이래서 영화는 영화다.



이 영화는 대사가 짧다. 말로 설명하지 않고, 눈으로 보여 준다. 끔찍한 범죄와 학대당하는 비천한 인물들을 스크린 한 중간에 던져 놓았다. 그리고 아저씨 태식은 공공을 위한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개인적인 응수를 할 뿐이다. 그래서 아주 사적인 이야기이다.


2010.09.15    07:4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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