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문학과 지성사,2003 )
-김경욱
재미있는 책을 가지고 모이자,라는 제안에 약간 고민을 했다. 절망에서 끌어내준 책도 있고,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준 구절도 많은데 어떤 게 좋을까. 책장을 둘러보다 피식 웃음이 나는 책이 있었다. 짙은 파랑색 표지의 김경욱 단편소설집이다. 낙서도 많이 하고 가끔 찾게 되는 환타, 불량식품 같은 별칭으로 부르며 하대했었다. 생각해보니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표현이 적절하지 못하다. 보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따금 좋을 때도 있어서 돌아보게 된다고 해야겠다.
우연한 기회에 내용을 미리 듣고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라면 사색적이고 목가적인 화자가 등장해서 현실자체 보다 미화된 그림을 그리는 편을 좋아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기대했던 바와 정반대의 책이었다. 죽음, 자살, 허무주의, 익명성, 사랑 없는 섹스 같은 상업적이고 선정적인 키워드로 12개의 단편을 썼다. 게다가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유지 한다기 보다 오히려 범죄자에 가까운 인물이 화자인 경우가 허다하다. 픽션은 어디까지나 픽션이고, 재미만 있으면 무얼 써도 무방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처음 받은 인상은 이 작가가 인기 좀 얻어 보자고 자살을 종용하거나 두 페이지마다 사람을 죽이는 글을 잔뜩 썼구나 싶었다. 재미있긴 했지만 이상하고 어쩐지 싫었다. 그리고 한동안 덮어두었다.
어느 날 감정의 밑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문득 김경욱의 소설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절벽을 찾아가 뛰어내리는 것을 목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게임이 있다. 죽기 위해서 온갖 고난을 극복해내는 것이다. 심지어 죽음의 길에 방해가 되는 것을 해치우기도 하면서 말이다.] 토니와 사이다가 자살여행을 떠난다는 단편의 한 구절이었다. 한 권을 모두 읽었을 때의 느낌과 다르게 낱장으로 몇 장 넘겨보자니 꽤나 신선한 구석이 있었다. 일단 그가 말하는 죽음이나 살인은 극적이지 않다. 말하자면 영화에서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죽음이 아니라 스치기만 해도 죽어버리는 스턴트맨들의 허다한 죽음이다. 게다가 하나같이 화자는 있으되 그다지 주인공다운 인물도 없다. 이걸 발견하고, 모든 책이 교훈적이고 사색적이지 않다고 되새겼다. 쉽게 죽음을 말함으로 생명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의도 같은 것도 찾을 수 없다. 그냥 허무하고 너무도 쉬울 뿐이다. 카프카는 우리는 신의 머리에 떠오른 허무주의적 사고들이자, 자살적 사고들이라고 했다. 행복은 충분히, 무한히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는 신의 언짢은 기분, 기분 나쁜 날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한 희망은 없다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가끔 정말 그런가 싶을 때도 많다. 삶과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진지하게 생각이 많아졌을 때, 문득 툭 내려놓는 기분으로 이 소설책을 읽는다.
이 책의 불량식품 같은 부분은 특히 인생을 게임에 비유하는 부분이다. 게임에서 본질적인 승리자는 게임 그 자체라고 정의한 다음 몇 장 뒤에 "당신을 게임에 참여시킬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패배자가 되어줄 용의가 있다." 라고 적극적으로 독자를 글에 끌어들이고 있다. 기분이 나쁘면서도 읽고 있다. 이런 책은 한권이면 족하다 싶다. 단편들 중 [Insert Coin]을 특히 여러 번 읽었다. '유혹'이라는 단어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았다. 한밤중에 한강대교 아치에 매달려서 '클리셰'를 외치는 사내를 상상해보라. 욕구, 욕망, 충동과 구별되며, 유혹이란 무를 향해 벌어진, 불길하게 째진 틈이라 한다. 그에 따르면 유혹이란 존재하려는 경향이 아니라 소멸하려는 경향 이라고 한다.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얻지 못하는 허무함이 결국 삶의 유혹이며 , 그 잔인한 정체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살아가고 있고 희망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사내는 "승부가 나지 않는 게임은 죄악입니다." 라고 한다. 뻔한, 이 게임의 목격자이자 참가자인 우리는 수없이 달아나지만 결국 다시 배팅하고 있는 셈이다.
굳이 이 책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추천하고자 함이 아닌 자랑 싶어서다. 사적인 재미와 의미를 간직하고 책장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책이야말로 보물이지 않냐고 말하고 싶어서다. 다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 할 수 있는 범위가 좁지만 푼크툼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이 후기 역시 매우 편협하고 비전문적인 한 독자의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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