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의 전설(The Legend of 1900, 쥬세페 토르나토레, 1998 )
전설이란 시간을 초월하여 기억되는 사람이나 그 행위를 말한다. 신격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화와 다르다. 이 영화는 20세기 초 ‘아메리칸 드림’의 정점에 서 있는 한 피아니스트의 삶을 그린다. 그는 출생기록도 사망기록도 없는 인물로,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마치 전설처럼 그의 친구 맥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데니 부드맨 TD 레몬 나인틴 헌드레드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1900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처럼 영화는 그때 그 시대가 꿈꾸었던 ‘드림’이 무엇이었다고 정의하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꿈들이 너무나 컸고, 아름다웠으며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고 한다. 세기말인 1998년 개봉한 이 영화에서 반은 좌절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맥의 이야기고 , 그 반은 희망에 벅찼던 그때를 현재형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세기말에 듣는 신년음악회’라고 이름 지어 본다.
이 이야기는 처음 아메리카를 보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배는 왕복선인데 미국행 배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영화에서 거의 나오지 않지만 20세기의 시작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경제 대공항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오히려 전쟁의 수혜를 입었지만 급격한 경제성장에서 오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품고 있었다. 역사는 유럽의 좌절이 낳은 아메리카 드림 역시 허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때의 사람들은 아메리카를 꿈꾸었다. 맥은 여러 번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나인틴 헌드레드에게 배에서 내리자고 권한다. 하지만 그는 그 꿈에 편승하지 않고 관조자로서 생을 마감한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1등실 피아노 위에서 발견된 아이는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나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다.” 는 내용이었다. 그 재능은 대단해서 배에서 내릴 수 있게 해줬고, 배에서 내리더라도 성공한 삶이 예견되었다. 그 것은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타고난 것이다. 그리고 두 번 째 이 영화를 봤을 때 비로소 운명이란 단어를 한 번 더 되새겨 보게 되었다. 그는 재능이란 행운을 타고났지만 그것을 빼고 나면 운명은 가혹하기까지 하다. 석탄실의 흑인 노동자였던 데니 부드맨은 1900년의 첫날 TD라는 상표의 레몬박스에 담긴 아기를 줍게 된다. 이러한 사연은 고스란히 그의 이름이며 넘을 수 없는 굴레가 된다. 미국의 흑인은 노예에서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가난했고, 문맹률도 높았다. 데니는 아이를 뺏길까봐 숨겨 두고 키운다. 1등실 피아노 위에 아이를 버렸던 부모의 바람은 이루어 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가 6살에 데니가 불의 사고를 당해 다시 고아가 된다. 출생기록도 없으며 배가 세상의 전부였던 아이는 평생을 그곳에서 산다. 그에게 석탄실에서 자라게 된 것과 1등실 피아노 앞에 앉게 된 것은 똑같이 그저 주어진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처음 석탄실에서 그가 1등실로 나왔을 때, 규칙 위반이란 말은 참 인상적이다. 그는 배 위 어디에서나 피아노를 연주한다.
어느 날 재즈의 창시자라 불릴 만큼 큰 성공을 이룬 제리는 겨루기 위해 나인틴 헌드레드를 찾아온다. 그는 감격적으로 음악을 감상하지만 제리는 그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 한다. 이것이 도시이며 육지로 표현되는 그들의 방식인 것이다. 재즈란 본래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감성을 중시하는 흑인의 음악이다. 세련되고 감성적인 음악을 체득한 제리의 음악은 예술 그 자체였지만 천재적인 나인틴 헌드레드와 비견할 수 없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자면 개인의 의지나 노력 따위로 어찌 할 수 없는 운명, 시대적 조류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가 배에서 내리지 못한 이유는 은유적인 대사로 표현하지만 이러한 총체적인 절망을 안고 있다. 내게 이 영화의 가장 클라이막스라면 단연 그의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었다. 그가 천국에 가서 폭발 때문에 한 팔을 잃었다고 한다. 남은 게 오른 팔 뿐이라 그걸 받게 되면, 없는 것 보다 낫겠지만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을 것이란다. 그래도 그는 배에 남는다.
시대를 빼고 말할 수 없는 영화라 어둡고 쓸쓸한 내용으로 리뷰를 썼지만, 사실 절반은 천진하고 명랑한 피아노곡으로 이루어진 영화다. 데니는 아이가 없는 어른이 가는 곳이 고아원이라고 한다. 한 농부는 세상 끝에서 바다가 삶은 무한하다고 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분절되어 희망만을 가득 싣고 미국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나인틴 헌드레드의 모든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의 삶만을 떼어 놓고 보면 마치 신년음악회처럼 벅차고 감동적인 선율을 가지고 있다. 소녀와 시작뿐이었던 사랑은 동화 같다.
시대를 빼고 말할 수 없는 영화라 어둡고 쓸쓸한 내용으로 리뷰를 썼지만, 사실 절반은 천진하고 명랑한 피아노곡으로 이루어진 영화다. 데니는 아이가 없는 어른이 가는 곳이 고아원이라고 한다. 한 농부는 세상 끝에서 바다가 삶은 무한하다고 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분절되어 희망만을 가득 싣고 미국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나인틴 헌드레드의 모든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의 삶만을 떼어 놓고 보면 마치 신년음악회처럼 벅차고 감동적인 선율을 가지고 있다. 소녀와 시작뿐이었던 사랑은 동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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