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작은 사람, 그녀가 사는 아주 작고 작은 세계에 대한 이야기.
원작이 따로 있고, 각본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라는 신인이다. 워낙 지브리의 전작들이 대단해서 기대에 차진 않지만, 짧고 예쁜 아동용 동화책을 한 권 읽은 느낌이다. 아기자기한 에피소드 몇 개와 예쁜 그림을 채워 넣어서 이야기는 단조롭지만 볼만 하다.
일단 딱 시작하면 서로 다른 생을 살아가는 몇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인간들의 이야기는 흔하니까, 인간이 아닌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그들’ 에 대한 이야기다. 애니 중반부 까지 보면서 [캇파쿠와 여름방학을, 하라케이치 ,2008]을 떠올렸다. 본디 밝지만 약자인 캐릭터들이 현실의 부조리에 맞서는 모습은 무엇보다 우리의 감성에 호소한다. 웃다가 얼굴을 찡그리면 무표정하다가 그런 것 보다 변화의 폭이 커지니까 말이다. 그들의 생 자체가 나약한 것이 아니라, 개개의 삶은 강인한데 구조적인 문제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멸종위기의 맹수를 생각해 보자. 두 애니 모두 따뜻한 시각과 애정을 가진 인간이 등장하여 ‘이해와 배려’를 시도한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반드시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부분을 캇파쿠에서는 지나치게 강조해서 생각을 강요당한 느낌이고, 아리에티는 두루뭉실 뜬구름을 잡아서 충분히 전해지지 않았다.‘그들’의 삶을 이야기 할 때 ‘빌려온 물건’ 이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한다. 주인이 잃어버린 사실을 모르거나 알게 되더라도 아주 사소해서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만한 것도 주지 않은 것을 몰래 가져오면 엄연히 훔친 것이다. 같은 가치로 되갚거나 그대로 돌려주지 않는데 빌린 것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들은 절도라고 말하고 ‘그들’은 대여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간 입장에서는 자신의 소유물이 줄어드는 현상뿐이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가기 위해 목숨을 담보하고 물건을 가져오는 것이다. 또, 우리가 놓친 부분도 있다. 주인의 자격, 혹은 소유의 당위성에 대한 판단이다. 인간 중에는 ‘그들’조차 소유 할 수 있다고 우기는 부류도 있다.
2010.09.13 8: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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