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사람일 거다. 애나는 밝고 굉장히 건강한 친구인데 그걸
눌렀을 때 나오는 이상한 표정들이 좋을 것 같다. ”
-감독 인터뷰 중에서
아직 겨울이 아니다. 만추란, 일반적인 가을이 가진 풍요와 결실의 은유마저 발가벗겨진 늦가을을 의미한다. 리메이크작인 이 영화에는 가을의 풍경이 없다. 원작의 낙엽이 안개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안개는 가을에 더 자주 볼 수 있지만 가을의 전유물이 아니다.
영화 대부분의 내용은 티져영상에서 이미 공개됐다. 과거에 묶여 웃지 않는 여자가 사랑을 파는 남자(제비?)를 만난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이도, 욕정에 불타는 사이도 아니다. 당연히 시선이 여자에게 향하게 된다.
언제나 안개가 내리는 도시를 배경으로 제목의 ‘가을’을 대변하는 것은 애나라는 인물뿐이다. 이 인물의 감정을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다. 만개했다가 시든 장미는 더 이상 시각적으로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아직 꽃의 향기가 남았다. 격하게 치달은 ‘절정’ 이후에 머뭇거리며 ‘결말’로 가는 매우 조심스러운 간극이다. 애나와 훈은 이런 계절의 징검다리 위에서 마주쳤는데, 여길 건너면 다시 안개가 내리고 있을지, 혹은 새하얀 겨울일지 알 수 없다. 아직 그들은 사랑하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그 누구도 무언가 새로 시작하거나 끝내지 않았다.
빨간 립스틱을 발라보고, 지운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말을 걸려다가, 돌아선다. 그녀의 사랑은 과거형이면서 현재까지 이어왔고, 식당에서 '왜'를 외치는 때가 그 종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는 망설이고 있는 게 아니라 질문이 없는 문제에 뭐라 답을 할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중국어를 모르는 훈이 ‘화이’ 혹은 ‘하오’ 라고 대답한다. 그 순간에 그녀에겐 이해보다 그저 들어 주는 것이 더 절실하지 않았을까. 적당한 대답이 아니라도 대답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 애매한 시절이 지나 그녀도 그녀의 질문을 찾게 되면 답 또한 나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묻게 될 것이다.
웃지않는 여자가 웃게 되었을 때 그녀는 어디로 어떻게 달려갈 수 있을까. 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울 만도 한데, 영화의 결말 부분을 보면 그녀는 상냥하게 말을 건넨다. 그게 훈이었든 또 다른 누구였든 이건 이미 영화 '라붐'의 결말과 같다. 다만 그녀의 맞은 편에 아무도 아직 앉지 않았을 뿐이다. 곧 그녀의 지나치리 만큼 늦고, 가득 차버린 가을이 끝나고 그 어떤 새로운 계절이 찾아 올 것이다. 반드시 겨울은 아니다.
그나저나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남자에게는 뭐가 필요한 걸까. 연애의 목적이 섹스나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 훈도 언젠가 한 여자의 순정이나 몸을 원하게 될까? 아니면 그가 만났던 모든 여자들에게 집착만 하지 않았을 뿐 그 모두를 사랑했던 걸까. 영화에서 훈의 과거나 미래는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그렇고 그런 류의 사람이라고 색안경을 씌워주고, 랜즈의 색깔을 입힌 낭만적인 광경을 즐기라고 한다.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번 상기함으로 인해서, 나는 색안경을 벗고 보는 훈은 어떤 사람일까 조금 궁금했다. 화면에는 계속 두사람이 등장하는데, 이야기의 흐름은 집요하리 만큼 애나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도 훈은 그렇고 그런 사람인 동시에 , 영화가 끝나면 다른 어떤 이야기를 간직한 미지의 인물로 재탄생한다.
화이, 화이, 화이 =ㅁ=
계절은 바야흐로 겨울도 지나 다시, 봄인데. ㅋㅋㅋ 희안하게 뒤섞인 영화다. 몽환적이라고 해야 하나. 스토리보다 감성에 빠져들어야 하는 영화다.
2011년 3월 7일 AM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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