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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0일 화요일

블랙스완 - 善의 線을 넘다.


[영화11.] 블랙 스완 (Black Swan) ,대런 아로노프스키, 2010




적막한 밤이면 가끔 E.A.포우의 단편을 꺼내 읽는다. 기괴한 그의 글 속에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떨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어렸을 적이나 지금이나 포우의 글 이 무섭지 않다. 어쩐지 명멸하는 생의 빛이 슬프게 느껴졌고, 그들의 광기와 편집증을 지켜보는 작가의 오묘한 시선이 좋았다. 그는 인물들이 목전에 둔 비극을 방관하거나 동정하는 것이 아닌 훨씬 공감하는 입장에서 이해하고 독특한 색체를 입혀 독자에게 전한다. 영화 블랙스완을 보며 ‘메들린 어셔’의 죽음을 떠올렸다. 자책감과 공포는 아무리 달아나도 끝내 따라붙어서 뜨겁게 품에 안긴다. 스토리는 전혀 다르지만, 인간 내면의 매우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갔으며, 근저에 깔린 감성이 침울하면서도 격정적인 것이 닮았다. 타인의 아픔에 무뎌지고, 스크린에 낭자한 혈흔을 즐길 뿐인 군중 틈바구니에서 목을 길게 빼고 속으로 울었다. 매우 강렬하며, 아름다운 영화다.



이 영화는 엄밀하게 흑백논리를 적용해 현실을 재단한다. 늙은 베스를 제치고 젊은 니나가 극단의 새로운 프리마돈나가 되어 흑조와 백조를 연기한다. 어머니 에리카는 그녀를 통제하고 감시하며 금욕을 강요하는 반면, 단장 토마스는 본인은 그녀에게 무심하면서도, 관객을 열정적으로 유혹하라고 가르친다. 흑백, 미추, 선악, 젊음과 늙음, 고결과 방탕, 성공과 몰락, 아이와 어른 등 짝을 이룬 개념을 대조 혹은 대치해 두고 분명하게 구분해 냈다. 이로써 개별적인 것들이 훨씬 인상적이고 또렷하게 각인 된다. 여기에 영상까지 합세하여, 카메라로 대화하는 두 사람의 얼굴과 등을 함께 잡거나, 거울을 보는 등 뒤에서 얼굴이 비친 거울 속을 비췄다. 대비된 색상이나 사물의 배치, 인물의 시선을 통해 이분법적 사고를 종용한다.



하지만 영화에 몰입할수록 한 두 개로 고정 되었던 이미지가 퍼즐처럼 조각났다. 망상에서 이루어진 일인지 실제 일인지 구분 할 수 없는 사건들이 줄을 잇고, 인물의 감정이 조금씩 고조되다가 폭발한다. 무채색에 가깝던 배경이나 흑백이 주를 이루던 의상에서 갑자기 등장한 선홍색은 적잖게 당혹스러웠다. 앞면에 치중 했던 시선은 손의 위치를 따라 뒷면을 신경 쓰게 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에 점점 더 예민해지며, 촉각을 곤두세운다. 공포 심리가 주인공을 극한으로 몰아간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생각하며 지켜보자니 가슴이 먹먹했다. 의도 하지 않았음에도 잠든 동안 등을 긁어대는 손톱처럼 징그러운 게 또 있을까. 그녀는 성실하고 정직하게 얻은 자리인데도, 애초에 그 자리의 주인이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에 집중한다. 자책감에 시달리며, 스스로 낸 상처를 통해 자신도 똑같이 상처입고 나약한 존재라고 우긴다. 결국, 칼을 든 가해자의 모습으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백조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성공한 결과에만 매달리는 부류에게 니나의 두려움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큰 갈등은 니나라는 인물이 위계의 재편성이나, 세계관의 충돌에서 겪는 혼란과 고통일 것이다. 인물들 간의 갈등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희생은 당연시 하면서도 폭력은 인정 할 수 없는 착한 인물이었다. 욕망에는 필연적으로 폭력과 희생이 따르는데, 우리는 무턱대고 승자에게 관대하다. 사회 통념이나 법적으로 합당하더라도 약자에게 부당한 처우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의 논리가 좋다 나쁘다 가름하자는 말이 아니라 이것들을 우리가 얼마나 당연한 듯 여기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이다.



니나의 마지막 대사, ‘I was perfect’ 의 목적어는 뭘까. 니나 세어스라는 고유명사와 백조 단어를 넣고 싶다. 결말을 통해 흑조를 연기한 백조로 완벽했으며, 그녀 자신으로 온전해졌다. 약하고 겁이 많은 존재라도 사랑을 갈구하며 생을 욕망하게 마련이다. 흑조의 화려함 이면에는 치열한 경쟁, 비정한 승자의 모습, 퇴폐와 천박함이 공존한다. 아무도 상처주지 않는 착하고 아름다운 흑조로 남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비장함이다. 생명은 굉장히 소중한 것이고 베르테르의 죽음은 예술이란 말조차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욕구에 솔직했기 때문에 가장 자신다웠으며 , 멋진 무대를 펼쳤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 please... 안타까운 종종걸음이 눈에 밟혔다. 이 영화 봤니? )

2011.05.10 pm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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